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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척하기 ”
우리 인간은 슬프기 때문에 울고, 무섭기 때문에 떤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상식에 대해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 ~ 1910)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울기 때문에 슬프고, 떨기 때문에 무섭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감정은 순전히 몸에서 기원하는 본능적인 것이지 정신에서 기원하는 인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제임스가 1884년에 발표한 '감정 이론(theory of emotion)'의 핵심 내용이다. 덴마크의 내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랑게(Karl Lange, 1834 ~ 1900)도 1885년 이와 비슷한 이론을 독립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이라고도 부른다. 제임스는 이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As If principle"이라는 걸 제시했다. "어떤 성격을 원한다면 이미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감정이 행동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말로 바꾸기가 영 쉽지 않은데, 그간 '가정 원칙' 또는 '그런 척하기 원칙'으로 번역되어왔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은 고난에 시달리기 십상인데, 제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날엔 감정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도 감정을 만든다는 쌍방통행로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다른 통행로를 처음 제시한 제임스는 일부 심리학자들에게서 가혹한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다.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 1966 ~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임스는 자신의 가설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보수적인 심리학계의 시선으로 볼 때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결국 제임스의 가설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60여 년이 흘렀다." 와이즈먼은 제임스의 '가정 원칙'이 60여 년간 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말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학계의 평가와 관계없이, 제임스의 이론은 미국의 대표적인 성공학 전도사들에 의해 1930년대부터 줄기차게 인용되었다.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성공학 전도사들이 바라 마지않던 성공학의 제1계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성공학 전도사들, 즉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 ~ 1955),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 1883 ~ 1970),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1898 ~ 1993) 등은 사실상 제임스를 그들의 이론적 사부로 모셨다. 카네기는 1936년에 출간한 『인간관계론』에서 제임스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 "행동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행동과 감정은 함께 발생한다. 따라서 더 직접적으로 의지의 통제하에 있는 행동을 조절하여 의지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감정을 간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쾌하지 않을 때, 저절로 유쾌해지는 최고의 방법은 유쾌한 마음을 먹고 이미 유쾌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힐 역시 1937년에 출간한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에서 제임스의 이 발언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꿔 말해 우리는 단지 결심한 것만으로는 우리들의 감정을 즉석에서 바꿀 수 없지만 행동을 바꿀 수는 있으며, 행동을 바꾸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바뀐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듯이 행동해야 한다, 새로운 사고를 통해 새로운 행동에 이를 수 있듯이 새로운 행동을 통해 새로운 사고에 이를 수 있다. 열정적인 사람이 돼라. 열정적이 되면 열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미소를 지어라.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그러면 당신이 굳이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날 내면의 기쁨과 열정을 체험할 것이다." 또 필은 1967년에 출간한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도 '그런 척하기' 원칙을 한번 시도해보라. 놀라운 힘과 효과를 느낄 것이다.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심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외향적으로 변하려면 먼저 자신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럼없이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현명하게 다루는 확신에 찬 사람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공학 전도사들은 제임스의 이론을 "꿈꾼 대로 이루어진다"는 식의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이 과장은 저질렀을망정 사기를 친 건 아니다. 제임스의 이론을 이어 받은 코넬대학 사회심리학자 대릴 벰(Daryl Bem, 1938 ~ )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이 감정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바꾼다고 주장한다. 벰이 연구를 위해 주목한 사건은 1954년 5월 17일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사건(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흑인에 대한 그간의 '분리 평등' 원칙을 뒤집고 교육시설의 분리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10여 년 전인 1942년에 실시된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학교 통합 정책, 주거 통합 정책, 대중교통 통합 정책에 찬성한 백인들의 비율은 각각 30퍼센트, 35퍼센트, 44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판결 후 2년 뒤인 1956년 자료에서는 그 비율이 49퍼센트, 51퍼센트, 60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물음에 이끌려 물리학도였던 벰은 자신의 전공을 사회심리학으로 바꾸었다. 그는 1960년 리드대학(Reed College)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MIT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물리학을 전공하다가 중도에 사회심리학에 심취해 1964년 미시간대학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7년부터 1970년대 초반에 걸쳐 발전시킨 '자기 지각 이론(self-perception theory)'을 내놓았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최창호, 『인간의 선택: 천년을 움직인 심리학 지성 35인』(학지사, 2000), 38~39쪽; 캔더스 퍼트(Candace B. Pert), 김미선 옮김, 『감정의 분자: 심신의학을 넘어선 과학』(시스테마, 1997/2009), 184~187쪽.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 박세연 옮김, 『립잇업: 멋진 결과를 만드는 작은 행동들』(웅진지식하우스, 2012/2013), 29쪽, 238~239쪽. 데일 카네기, 베스트트랜스 옮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더클래식, 1936/2010), 97~98쪽. 나폴레온 힐, 민승남 옮김,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2』(국일미디어, 1937/2010), 46~47쪽, 85쪽. 노먼 빈센트 필, 정경옥 옮김,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21세기북스, 1967/2007), 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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